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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복지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오늘 영풍문고에  들려 책 한 권 발견했습니다. 올해 출판된 책인데

작고 얇고 구석에 꽂혀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주황색  표지를 한 작은 책.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소한 소통이 필요하다

 

 

책장을 넘기는 데 딱 읽기 싫은, 지루할 것 같은, 뭘로 표현을 해볼까요?

너무나 소박하고 검소하다고 할까요?

꾸미지 않은 장식 악세사리는 아예 1도 없고,

글로 시작해서 글로 끝맺음을 한 p176, 11.5 ×18.5 사이즈! 

책은 작지만 너무나 큰 사람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오후에 차를 한 잔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완독을 했습니다. 마시던 차는 식어 있었구요.

글로 시작해서 글로 마무리한

이 자그마한 책 페이지 페이지마다 제가 모르는,

알 수도 없는 이야기, 그리고 감동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있는 눈에 손수건을 가져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는 사회복지사로 장애인 남편과 결혼하고 생활하면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마주하게 되는

생생한 삶의 현장 이야기,

사람 이야기,

사회 이야기가

땀 흐린 노력과 시간들이 더해져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이 담겨 있는 큰 사람의 책이었습니다.

 

다시 정독합니다.

 

 

 

 

 

 

1.  쉬운 정보의 힘

 

나는 쉬운 정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쉬운 정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쉬운 정보가 뭔가요?"

"세상에 있는 쉬운 것들을 모아서 가치 있는 정보 형태로  가공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원래 있는 정보를 쉽게 만든다는 건가요?"

일상은 정보로 넘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 정보글 확인하고, 출근 전에는 교통 정보를 살핀다. 뉴스는 간밤의 이슈를 정리해서 보여주고 등교하거나 출근해서 접하는 것도 모두 다양한 형태의 정보이다. 그런데 정보는 모두에게 공평할까?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없을까?  정보 격차, 정보 불평등 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예를 들어보자. 시각장애인은 눈으로 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점자나 음성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청각장애자는 수어로 소통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어나 글자로 요청하고 얻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청각장애인에게 수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어떨까? 발달장애는 인지, 언어, 사회성 등의 발달이 지연된 상태로, 발달장애인은 인지, 즉 정보를 받아들여 아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비장애인 다수가 발달장애에 대해서는 청각장애나 시각장애만큼 알지 못하고, 딱히 관심도 없기에  발달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른다. 그 결과 비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그대로 제공되는데, 한자어, 외래어, 전문용어까지 뒤섞인 정보는 발달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인 나조차도 때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공평하지 않다.

 

     이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면 쉬운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신념이 생길 즈음 일명 발달장애인법,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2014년 제정. 2015년 시행)되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20년도 더 전에 '쉬운 정보'easy read라는 개념이 정착되어 발달장애인의 권리로 지원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국내에는 쉬운 정보를 만들거나 다루는 기관이 거의 없었고, 생길 때까지 기다리거나 정부에 요청하기보다 내가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런 신념과 생각으로 쉬운 정보를 통해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매년 경험한다. 이 경험이 말할 수 없이 즐겁고  보람차서 쉬운 정보 만드는 일이 내 삶의 사명처럼 느껴진다. 회사 이름은 '소소한 소통'으로 지었다.

줄여서 '소소' 일상의 소소한 순간까지 소통의 어려움이 없는 삶을 돕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기본적으로 신청주의다. 쉽게 말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발달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이용하려면 먼저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나 정책의 내용, 신청방법과 절차를 설명하는 정보는 대게 제공자 중심이다. 해당 부처나 담당 기관에서는 관행처럼 쓰일지 몰라도 관용 표현, 한자, 전문용어까지 뒤섞인 정보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낯설고 어렵다. 발달장애인은 커녕 비장애인조차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발달 장애인은 손해 보는 일이 잦고, 이것이 그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몰라서,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해서 신청하지 못했어도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건 발달장애인 개인의 탓으로 여겨진다.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노력으로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없다면, 그런 격차는 사회문제이고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평등한 알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하겠다는 목표로 당장 발달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부터 쉬운 정보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알 권리를 누리는 것, 그 이상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쉬운 정보를 접한 발달 장애인은 몰라서 주변에 묻거나 결정을 위임하는 일이 줄어든다.

자연히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갖는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자존감과 삶에 대한 만족감 또한 높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의 범위, 활동 영역이 확장된다.

     성인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단조로운 삶을 보내는 편이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드나들며 그곳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으로 삶의 경험을 쌓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다양해지면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게  된다.

기관 밖, 비장애인이 다수인 사회로 나갈 기회가 더 자주 생긴다. 그렇게  기관 밖에서 일상을 보내는 발달장애인이 많아지면 그를 보며 다른 발달장애인도 자신감을 얻는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구나'

     '나도 해 봐야지'

     자연히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갈 동기를 부여받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며 타인과 맺는 관계 또한 다양해지고 삶은 갈수록 풍성해진다. 쉽게 설명된 정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고 익히는 것은 물론, 몰라서 손해 보거나 피해 보는 일도 줄어든다.

 

     쉬운 정보가 없었을 때는 발달장애인이 무언가를 어려워하면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이지' '발달장애인이니까 어렵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쉬운 정보가 보편화되면 발달장애인이 무언가를 어려워할 때 그 원인은 '쉬운 정보의 부재'가 될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글을 읽고 청각장애인이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은 쉬운 정보로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할 것이다. 그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 잘못의 원인과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쉬운 정보 만드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정보의 사용자, 곧 나의 고객이 될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일이었다. 10명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다. 일상을 살면서 경험을 직접 듣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쉬운 정보에 대한 경험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소소하게 물어보았다.

     " 주말에 뭐 하세요?"

     " 설거지나 청소 같은 집안일은 주고 누구랑 같이 하시나요? 혼자 하세요?"

     일상을 쪼개고 각각의 순간에 질문을 던져서 쉬운 정보가 필요한 주제나 상황을 찾아냈다.

     " 주말에는 자조모임 사람들이랑 영화 보러 가요."

     " 혼자 간 적은 없으세요? 영화표는 누가 사요?"

     " 직접 사 본 적은 없는데... 영화표 끊는 거 어렵지 않나요?"

     " 안 어려워요. 제가 영화표 끊는 법 알려드리면 직접 가서 해 보고 싶으세요?"

     " 그럼요. 당연하죠!"

     이때 간담회에 참석했던 발달장애인 대다수가 지금까지 감수위원으로 쉬운 정보 제작 과정에 참여한다. 감수위원은 소소한 소통이 만든 쉬운 정보가 정말 쉬운지, 제공자가 아닌 사용자 중심으로 쓰인 게 맞는지  검토해서 쉬운 정보의 완성도를 높인다. 4년 넘게 쉬운 정보를 접한 이들은 이제 주어진 쉬운 정보를 제공받는 것을 넘어 먼저 목소리를 낸다. 일상의 어떤 정보가 더 쉽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찾아 요구한다. 쉬운 정보를 제공받는 것과 요구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당연한 권리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2018년에는 일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마주하는 근로계약서를 쉬운 정보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한 청각장애인으로 부터 쉬운 근로계약서가 자기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었던 그는 날 때부터 수어로 의사소통을 해 왔기 때문에, 공용어인 한글이 마치 외국어처럼 계속 학습해야 하는 언어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다 계약서, 특히 근로계약서는 평소에 흔히 쓰지 않는 말로 가득 차 있어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단다. 그런데 계약 내용이 쉬운 말로 큼직큼직하게 쓰여 있고 그 앞에 이해를 돕는 그림까지 그려져 있으니 전혀 어렵지 않게 자신의 노동 조건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 왔다.

 

     이 계기로 알게 되었다. 쉬운 정보는 발달 장애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유익하고 편리하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언어를 배우고 있는 어린이, 인지능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어르신 모두에게 그렇다.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설명할 일도 줄 것이다. 모르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눈치 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서로 간의 오해도 줄고  마음 편한 소통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계속 찾고 만든다. 장애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통을 돕기 위해서.

 

 

 

 

 

 

 

'쉬운 정보'

분명, 큰 도움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직접 만들었다고 하시니

제가 큰 사람이라고 했죠!

그리고,

비단 장애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편리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달장애인과 하루 몇 시간씩을 보내고 있는 저도 

이런 정보를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롭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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