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대학교 앞에서 66년간 영업해온 식당 「아카몬소바」가 폐점. 마지막 만찬의 잔을 기우리며 학창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을 나누다.
도쿄대학교의 심볼 「빨간 문」 앞에서 66년간 영업을 해온 「빨간문소바」 식당이 17일 폐점을 했다. 자가제면을 고집하면서, 도쿄대 학생이며 타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었다. 점주 히구찌 켄시로(86) 씨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가게를 번창시키는데 함께 해온 차녀 마사코(53)씨와 의논한 끝에 「맛이 떨어지지 않을 때」라며 가게 노렌을 내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마지막날 인 17일 이날은 작은 가게에 마지막 소바 맛을 보려는 손님들로 넘쳐났었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쾌활하고 건강하게 생동감 있게 」 라는 좌우명으로 가게를 운영해 왔다는 히구찌 사장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손님들은 많이 아쉬워했다.「그만두지 않아! 내 생애, 아카몬소바다」 라고 항상 농담으로 온화하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가게 아카몬소바는 1956년, 당시 20세였던 히구찌 사장님은 친형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 도쿄대 학생의 제복과 교원의 양복을 만드는 테일러를 경영하고 있던 나가노현 태생의 아버지 희망데로 테일러 옆에 개업을 했다.
처음에는 소바를 치는 장인에게 조리를 맡겼으나, 히구찌 씨는 언젠가는 내가 뽑을 것이다며 마음을 먹고, 면을 치는 방법과 쯔유 맛을 내는 비법을 필사적으로 연구하고, 기술을 몸에 단련시켰다. 쯔유는 수십 년을 더하고 더하고 이어온 「가에시」를 가쯔오부시와 고등어부시등으로 추출한 다시로, 단골손님으로부터 부드러운 맛이라는 평판을 받았다.
소바가루는 나가노현 산. 히구찌 씨와 동생은 아침일찍부터 그날에 팔 것만 제면 한다. 큰 가마에 정성스럽게 삶아내기 위해 어느 때는 주방의 온도가 40도를 넘는다. 이인삼각(일심동체)으로 소바를 만들어 왔던 동생은 7년 전에 타계했다. 히구찌 씨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이었다. 이렇게 해 올수 있었던 것은 동생 덕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도쿄대학은 1968년 「동대분쟁」에 돌입했을 때 기동대원이 식당 앞 아카몬에 배치되는 등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그 삼엄한 분위기가 히구찌 씨도 겁이 났었다고 한다.
평상시의 도쿄대학교는 평온하다. 연구실에서 배달의 주문도 많이 들어온다. 수십 단을 올린 소바 나무찜통을 한 손과 어깨로 받쳐가면서 자전거로 달리는 히구찌 씨의 모습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배달 도중, 대학교에서 접수를 하고 있던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고...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마사코씨가 소바 치는 법을 배워, 전수받았다. 히구찌 씨는 코로나의 감염 확대에도 가게문을 열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소바 물 빼는 일도 어려워지고 해서 폐점하기로 결정했다.
17일 작은 의자가 34개로 좁은 식당에는 마지막 한잔을 권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동대이학부 출신으로 학창 시절에 많이 왔을 때는 주 3일을 다녔다는 회사원 남성(36)은 「학교 식당 2배 정도의 가격에도 먹고 싶어지는 맛있는 소바였다」 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아카몬과 아카 소바는 한 쌍을 이루는 존재였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가족 4대째 단골손님인 남성(72)은 「토시고시소바는 매년 여기에서. 가족과의 추억도 있는 가게이다」라고 하며, 그 딸은 (47), 「통통한 우동도 맛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었다」고 지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가게 안팎으로 「나답게 빛나게」 「소리 질러서 약함을 보여라」 등, 마사코 씨가 붓으로 쓴 메시지가 많이 게시되어 있다.
인간불언에 빠져,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남성(27)은, 식당의 상냥하고 온순하고 따뜻한 분위기와 히구찌 씨의 격려에 마음의 매듭이 풀리고 작년 가을에는 취업을 했다. 남성은 「여기 이 식당은 둘도 없는 장소였다」라 하면서 폐점을 매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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